questionet

나는 무엇을 개발하고 싶은 걸까? 1 본문

Idea/무엇을 개발할까?

나는 무엇을 개발하고 싶은 걸까? 1

orthanc 2021. 2. 18. 17:25

하면 할수록
CV쪽엔 흥미가 떨어진다.

내가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시각을 믿지 않은 지 너무 오래돼서인 걸까


사진이 아니라 영상 쪽을 해볼 수 있었다면
더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Image segmentation 을 하는 게 너무 하기 싫어 
억지로 코드를 베끼던 중

작업용으로 쓸 사진들을 찾다가 
오래 전에 죽은
키우던 강아지 사진을 열어보게 되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10년도 넘게 보지 않은 사진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동시에
그렇게 오래됐는데도 슬픈 감정이 눈밑까지 단숨에 차올랐다는 게 느껴졌다.

blur처리를 하고 나서 이미지를 출력하니
강아지의 모습까지 배경과 함께 흐릿하게 바뀌었다.
온통 뿌옇게 변한 사진을 보자
불안하게 두근거리던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모델을 개선하라는 과제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다음 장을 넘겼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 들어버린 감정을 다시 내려 놓는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강아지가 죽고나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는다.
일년에 두어번 누군가 그 아일 언급하면 그냥 듣기만 할뿐 
추억을 이어가지 않는다.

가족끼리도 나누지 않는 이런 내밀한 종류의 슬픔은
밖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길게 털어놓아지지가 않았던 것 같다.

이 블로그가 코딩을 하며 있었던 일을 적는 공간이라는 핑계로
빠져들고 싶지 않은 기분을 떨쳐내려 
이곳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깨달은 바의 결론을 적지 않을 수 없어
사정을 적어둔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선명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멈춰있고
통제와 통제불가능을 너무 제멋대로 넘나들기 일쑤라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기적인 행위라 여겨질 때가 많아
나는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채팅창에 NLP와 CV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해보라는 문자가 올라왔다.

처음 딥러닝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NLP를 하기로 정했었고
이걸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NLP라는 분야조차 포도송이의 포도알 하나에 불과할만큼
언어는 나의 가장 큰 철학적 문제였기 때문에
CV를 두고 고민할 일은 없다.


하지만 조금 전

슬픈 기억이 뿌옇게 변했을 때 내가 느꼈던 안도감,
슬픈 감정이 나를 막 괴롭히려던 찰나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안정감이

너무나 강렬했다.

나는 오래된 사진을 보면
그것이 매우 즐겁고 기쁜 자리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 할지라도
그 사진이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들게 하는 바로 그 이유로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한 가지 숙제가 생겼다.

선명했던 기억을 뿌옇게 만드는 인공지능에 대해
한 번 깊이 고민해 봐야겠다.

막연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망각을 도와주는 형태의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Idea > 무엇을 개발할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두연 퇴사 후 한 달 남짓 지난 무렵  (0) 2023.11.11
어떤 챗봇  (0) 2021.05.22
예술적 전처리  (0) 2021.04.29
나는 무엇을 개발하고 싶은 걸까? 2  (4) 2021.04.09
아이펠 교육 2일차  (10) 2020.12.3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