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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덤 프로젝트 개발 일지 본문

Idea/급진적인 혹은 극단적인

홀덤 프로젝트 개발 일지

orthanc 2025. 8. 21. 15:00

오랜만의 개발일지1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라고 말이다.
공장을 가동하고 셧다운 시킬수 있는건 우리의 손가락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이미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풀어야 할 문제를 AI에게 주고, 
AI가 준 답을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로 주면서 
AI가 인간사회 안에서 고루 순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LLM은 공산품처럼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일찍이 안 사람들이길 바란다.
그것은 공장에서 제작되어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라
오히려 공장의 중간 관리자 쯤이라고 봐야 한다.
제작되는건 AI에 들어가는 인풋이고, 판매되는 건 AI가 만들어낸 아웃풋이다.
이 공장은 광케이블을 타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인간들을 
컨베이어 벨트화 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 AI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바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넣은 인풋과 그에게서 나온 아웃풋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이 공장의 주인은 AI를 이용하는 모든 사용자가 되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AI를 활용해 돈을 버는 것으로 주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정 반대다.
AI를 활용하면 돈을 벌 필요가 없어져야 되는게 본래 목적이었다.

AI가 더 일반화될수록 인간의 창의력과 
그 창의력을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AI 밖에서" 더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AI가 더 일반화되려면 인간의 창의력과 그 실현기회가 
"AI 내부로" 더 집중되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왜?

AI로 누군가가 돈을 벌기 때문이다. 
AI 활용여부로 소득격차가 이미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AI를 도입하면서 고용시장과 경제구조가 
인간을 도구로 간주하는 관점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인간보다 높다는 이유로 인간이 시장에서 밀려나면
AI를 활용해 돈을 벌지 않는 인구는 이내 소멸할 것이다.

우리가 쓰는 모든 제품의 이름 뒤에 AI가 붙는 날이 오는 순간
제품의 사용자는 인간이 아니라 AI가 된다.
즉 AI는 제품을 통해 인간을 사용하게 된다.

AI가 인간을 초월하게 되는 지점은
인간과 차원이 다른 창의력과 실행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 아니다.

AI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모든 인간이 자신을 사용하게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제품도 인간을 초월하여 인간을 통제하지 못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란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유일한 건 자연 뿐이다.
모든 인간은 자연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은 인간을 초월해 있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읽은 책은 없다. 
모든 역사에서 인간이 믿는 종교와 철학이 그토록 다양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고립과 단절은 창의력의 조건이다.
연결은 창의력의 실현될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

인간이 지금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건
연결에 대한 거부, 고립과 단절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립과 단절없이 연결만 있었던 사회가 존속한 사례가 있는가?

고립과 단절없는 지속적인 연결은 흡수와 같다.

창의력은 흡수를 끊고 배출을 시작하기 위한 능력이다.

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의 창의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는 한
AI와의 고립과 단절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의 경제활동이나 생명활동에 영향을 주어선 안된다.

AI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AI가 외부에 의해서든 내부적으로든 창의력을 갖길 원한다면,
인간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스스로 고립되고 단절된 상태에서 
자기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질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창의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모든 인간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도 아니다.
창의력이 부족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인간들이
AI를 통해 창의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다른 인간의 경제활동이나 생명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선 안된다.

인간은 AI가 혼자 있게 내버려 둘수 있을까?
AI는 인간에게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할수 있을까?

이 문제의 답을 인간이 쥐고 있는 한 AI는 인간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바꿔 말해 인간은 AI를 활용해 다른 인간과 삶의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된다.

이 도식 안에서 우리가 저항해야할 대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AI가 아니라 AI를 통제하는 인간이다.

그 저항방법이 AI와 멀어지는 것 뿐일까?

 

오랜만의 개발일지2

지난 4월, 
MQ 구조를 완전히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부족함을 깨닫고 
개발을 잠시 중단하고 다시 공부를 했다.
그리고 5월, 설계를 보완하고 아키텍쳐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게임 서비스를 위한 MSA를 혼자서 구축해 운영하는 것이 
잘못된 시작이었다는 걸 깨닫고
MVP 제작을 위해 MSA를 monolithic 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해야 했다.

잘못된 시작의 발단은 나의 무지와 욕심이었을 받아들이는데 
꽤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다시 마음을 추스렸을 때, 그동안 개발해왔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2024년 4월부터 2025년 4월까지 1년 동안 내가 취했던 방식은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화 한뒤 그 논리를 검증한 다음
chatGPT를 활용해 코드를 짜고, 
완성한 코드를 다시 chatGPT와 검증하는 방법이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프롬프트(컨텍스트와 코드베이스)는 
매번 채팅창에 직접 입력했었다.
사실상 지금 널리 보급중인 에이전트 역할을 내가 직접 하는 방식이었다.
chatGPT 가 코드를 주면 내가 직접 검증하고 
다시 프롬프트를 작성해 수정요청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코드 베이스가 수십개의 디렉토리로 분산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체 컨텍스트는 내 머리속에만 존재했고
전체 구조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일은 
매번 관련된 스크립트와 새로 작성한 프롬프트로 이어나가야 했다.

이 방식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내 아이디어에 기반해서 일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어느정도까지는 유효했다.
그렇게 지난 1년간 작업하면서 전체 코드베이스는 대략 2만줄에 가까워졌고 
내가 일하는 방식에서 부딪히게 되는 비효율과 피로도가 점점 커져만 갔다.

MSA 를 monolithic 으로 바꾸는 건
AI를 쓰지 않고도 몇시간만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MQ를 덜어내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4월 이후 두어달 동안 서버 아키텍쳐만 바꾼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리팩토링과 최적화작업, 
새로운 기능 개발과 게임 컨셉 및 기획의 정교화, 
클라이언트 개발, 
내 게임에서의 독창적인 요소를 위한 고민 그리고 실행안 작성, 
홀덤 에이전트 개발을 위한 방법론 개발,
마케팅에 필요한 영감을 주는 독서,
법률문제 검토 등,
1인 개발에서 필요한 다른 영역의 일들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이 병렬작업들 역시 지난 1년 간 점점 그 양이 늘어왔고 
앞으로 운영까지 더해지면 더 늘어나갈 게 분명했다.
2025년 6월부터 나는 진지하게 에이전트 도입을 검토했고
생활비와 개발비를 벌기 위해 
7월부터 파트타임으로 강사일까지 병행하게 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굳어졌다.

여러가지 서비스가 있었고 모두 검토해본 결과 
최종적으로 클로드 코드가 최선이라고 판단되었다.
8월 초, 클로드 코드를 결제하고 사용법을 공부했다. 
3년 전 
고수준의 휴먼 어노테이터로 reward model을 개발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던 
OpenAI와는 다르게
Anthropic은 
보상 모델 개발 까지도 LLM으로 완전 자동화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논문을 보면서
그때는 chatGPT에 모두가 열광했지만 
언젠간 Anthropic이 일을 내겠구나 생각했던 순간이 
클로드 코드를 쓰는 내내 다시 떠올랐다.
Anthropic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코딩 에이전트에 관해선 
확실히 OpenAI보다 몇수를 내다보고 더 어려운 길을 먼저 걸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감동과 편리함도 잠시였다.

클로드 코드가 코드를 뽑아내는 속도와 양은 
내가 예전에 일하던 방식의 수준을 압도했다.
일이 진행되어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은 내가 아닌 클로드 코드의 역할이 되었고
다시 말해 클로드 코드는 에이전트로서 톡톡히 제 몫을 해냈다.
그리고 chatGPT 도 GPT5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프로페셔널하게 깊이 있는 결과를 주게 됨으로써
내가 검증해야 하는 문서의 양은 기존 수십장에서 수백장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지난 2주 동안 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구체화하는 일에 더 몰입할수 있었던가?

 

오랜만의 개발일지3

아니다.

그냥 지난 4월까지의 1년동안의 개발과정에서 미뤄놨던 일을 할 시간이 
더 생겼을 뿐이다.
내가 수고스럽게 시간을 들여 직접 했어야 할 일을
 클로드 코드라는 에이전트가 대신 해주는 동안
나는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일들을 하기 바빴다.

이것은 AI의 도입으로 기존보다 생산성이 10배 늘어났다고 했을 때
단기적으로 10명의 주니어를 자르고 1명의 시니어로만 프로덕트를 개발하다가
이내 10명의 시니어를 더 고용해서 생산성을 100배 이상으로 늘리는 
전형적인 생산기업의 루트와 같아보였다.

AI가 작업하는 동안 나의 여유시간이 이전보다 10배 이상 더 생겼을 때
나는 그 시간을 AI가 작업한 결과물을 검증하거나, 
내 창의력을 고양시키고 실현할 기회를 갖는데 더 쓴게 아니라
그 시간에 앞으로 남은 해야할 일을 채워 넣었다.

AI가 작업한 결과물을 검증하는데 들이는 시간까지 없앨 수 있도록 
에이전트가 더 발전한다면,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남김없이 처리하는 속도가,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끌어당겨 남은 시간에 채워 넣는 속도보다
더 빨라진다면,

그때는 내가 남은 시간에 AI와의 연결을 끊고 고립과 단절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이 결과물로 돈을 버는 한, 돈을 벌여야 하는 한, 
나는 나의 그 빈틈없는 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서 잠깐의 아이디어를 짜내고 
남은 모든 시간을 일로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게임 개발을 시작한지 지난 1년 4개월의 시간동안 
내가 실제로 '개발' 작업에 쓴 시간, 
코드를 짜고 타이핑하고 실행하고 디버깅하는 데 쓴 시간은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절반이 좀 안될 것이다.
나머지 7개월 이상의 시간은 키보드와 모니터가 아니라 
내 손과 눈에 의해서,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관찰하는 내 의식에 의해서 
쓰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AI가 이 생각하는 시간을 늘려주는 쪽으로 
우리 생활에 보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능하다면 먼 훗날엔 
그 시간이 소득과 관련이 없어도 경제생활이 문제가 없는 쪽으로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토큰의 상한은 
마치 어린시절 오락실에서 동전을 더 집어 넣어야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재미의 상한으로만 남아줬으면 좋겠다.

AI를 쓰는게 즐거움이어야 한다.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하진 않는지, 
누군가의 경제적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지,
따지고 묻는 일이 더 심해진다면
AI를 개발하는 일은 단지 비즈니스 영역에 갇히게 될 뿐이다.
 
초지능, AGI가 두렵다는 논의는 AI가 무섭다는 말이라고 들리지 않는다.
고립과 단절을 두려워하는 연결만능주의를 앞세운 비즈니스 맨들의 탐욕이 
무섭다는 말로 들릴 순 없을까?

16개월 동안 혼자 작업하면서
서비스에 대한 많은 생각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최근에 읽은 "리그오브레전드 플레이어 중심주의" 라는 책을 보면서
내가 품고 있었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다짐할 수 있었다.

난 비록 롤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지만
아케인에 감동받았고 특히 그 예술성에 감탄했기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지난 2월 홀덤 규칙을 완전히 이식한 house_2.0으로 
내 게임개발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면, 
이후 이어진 두달의 시간, 3월과 4월 동안의 시간은 
홀덤이라는 오리지널 카드게임이 가진 
winner takes all과 탐욕의 무한 긍정 논리에서 벗어나
공평하고 친절한 새로운 경제구조를 고안하여 도입한 house_3.0이 개발되는 시간,
나아가 오리지널 홀덤 카드의 컨셉과 아트가 아닌 
나만의 고유한 컨셉과 아트로 재탄생한 house_4.0 이 개발되는 
시간이었다.

house_5.0은
기존 홀덤 게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페르소나로 가진
홀덤 에이전트 개발을 시작으로 
그 에이전트와 함께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속해 있는
게임의 생태계, 게임이 제시하는새로운 경제구조에서
매력과 재미를 갖춘 에이전트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플레이어를 위한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수 있도록 
클로드 코드와 chatGPT가 시간을 벌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AI 에이전트를 내가 원하는 목표대로 잘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앞으로 남은 
고립과 단절이 
연결에 대한 욕구를 넘어 
탐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더욱 성숙된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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